조선조의 인물 평가 가운데 이상한 점이 있다.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고 구 왕조를 옹호한 정몽주(1337~1392)는 숭상하는 반면에, 조선 개국을 설계하고 주도한 정도전(1342∼1398)은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점이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사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왕조를 새로 만드는 것은 정도전 같은 영웅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정작 왕조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기존의 왕조를 옹호했던 정몽주 같은 인물을 충신으로 떠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사가 본디 그런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도전에 대한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 씁쓸하다. 정조(1752~1800)도 그런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정도전의 〈삼봉집〉을 간행하게 했다. 〈일득록〉에 그의 심정이 드러난다.
“삼봉 정도전은 나라를 세운 훈업(勳業) 이외에도 문장과 재기(才器)가 뛰어나 국초(國初)의 제현(諸賢) 가운데 그와 견줄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도 애석하게 그의 유집(遺集)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항상 이를 한스럽게 생각했다. 몇 년 전에 베낀 책 수 권을 얻어 얼른 간행하도록 명했다.”
돌아보면, 정도전 뿐 아니다. 조선 초기 성삼문과 신숙주에 대한 평가도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 비록 성삼문의 절개를 높이는 것은 마땅하지만, 신숙주에 대한 평가는 너무 인색하다.
조선중기 최명길과 김상헌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명분론자 김상헌이 보여준 불굴의 의기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목숨 걸고 궂은일을 처리하여 나라를 보전한 현실론자 최명길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후세는 오히려 김상헌을 더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조선시대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사공(事功)보다 명분에 치우친 면이 있다. 그러한 흐름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찌 우리의 역사가 이념과 명분으로만 존속되었겠는가. 필자는 이념·명분에 치우친 역사 평가 속에 실사(實事)·실공(實功)의 사공파들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실사구시의 작풍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본다.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일이다.
□ 글쓴이 :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